카테고리 없음

이언적 독락당 옥산서원 저서 양동마을

tytyuik 2019. 6. 21. 14:03

- 이언적 독락당




주제는 작자가 이언적李彦迪의 유적인 경주 옥산서원玉山書院의 독락당을 찾아가 늙어서야 비로소 오랜만에 독락당을 찾으니 산봉우리는 빼어나 주자朱子가 독락당獨樂堂


독락당은 회재 이언적 선생이 벼슬에서 물러나 있을 때에는 고향에 돌아와 옥산서원에서 독락당으로 건너가는 계곡을 흐르는 좁고 깊은 자계천 회재 이언적





서원입니다. 이 옥산서원의 뒷편 계곡 너머에 유서깊은 독락당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독락당은 회재 이언적 선생이 벼슬을 마치고 고향에 돌아와 지은 사랑채라고 회재 이언적 선생의 사랑채 독락당




- 이언적 옥산서원




경상북도 경주시 안강읍에 있는 조선전기 이언적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한 서원. 響絃詞에 있던 위패를 모셔왔으며, 1574년 옥산玉山이라고 사액賜額 되었다. 경주옥산서원慶州玉山書院


옥산서원. 최근 수정 시각 20190322 150558 . 이언적은 조선시대 최초로 체계적인 성리학 저술을 다수 남긴 주리론의 선구자였다. 을사사화로 옥산서원


옥산서원玉山書院 은 이언적李彦迪의 덕행과 학문을 추모하기 위해 1572년선조 5 경주부윤 이제민李齊閔이 지방 유림의 뜻에 따라 창건했다. 경주..회재 이언적의 옥산서원과 독락당





​​옥산서원玉山書院, 문화재 47호 경주의 옥산서원은 회재 이언적14911533 사후영남학파 성리설의 선구가 되었다. 옥산서원은 선조 5년1572에 경주부윤 회재 이언적 옥산서원玉山書院




- 이언적 저서




이언적李彦迪, 1491년 11월 25일 1553년 11월 23일은 조선의 성리학자이자 정치가이다. .. 저서로는 회재집晦齋集, 대학장구보유大學章句補遺1549, 속혹문續或問, 구인록求仁錄1550, 봉선잡 .. 저서인 봉선잡의 2권에서는 도학의 보편화와 이의 실천을 주장했고, 도학의 실천적 규범인 예서를 제시한 것으로서 ‎생애 · ‎연보 · ‎저서 및 작품 · ‎사상과 신념, 치적 이언적


보물 제411호로 지정된 회재 이언적 종택인 무첨당 모습 저서로는 대학장구보유, 속대학혹문, 봉선잡의, 구인록, 진수팔규, 정용구경연의 종가 24. 경주 회재 이언적 종가





그를 도통의 정통으로 평가하였고 생애 후반과 만년에는 자신의 저서와 학문 연구 외에도 이언적의 저서와 저술들을 정리, 간행하는 일을 주관하기도 했다. ​ 이언적의 회재晦齋 이언적李彦迪과 옥산서원玉山書院


후손들이 세운 청분각이 있는데, 이언적의 수필고본보물 제586호과 김부식의제외된 47개의 서원 중 하나로, 선생의 저서와 역대 명인들의 글씨와 문집이 보존 회재 이언적 옥산서원玉山書院




- 이언적 양동마을




안동 하회마을과 같이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이 된 경주 양동마을 마을 스토리를 보면 손중돈과 이언적이 없었으면 어찌되었을까 하면서. 손중돈과 이언적의 양동마을 두피디아 여행기


양동마을은 신분에 따라 집들의 배치가 높은 곳은 양반 낮은 곳은 하인의 집으로 둘러 쌓여있다. 손중돈에게 도움을 받아 이언적은 23세에 소과에, 이언적과 경주양동마을


안동 하회마을과 같이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이 된 경주 양동마을이다. 어떨땐 혼동되기도 한다. 훌륭한 것과 오래된 것을 어떻게 구분할까 손중돈과 이언적의 양동마을





동방 5현 회재 이언적의 삶과 철학1 양동마을 경주에서 신라가 아닌 조선을 만나다. 경주는 신라의 도읍지이고 경주에 가면 보통 사람들은 신라를 보고 온다 동방 5현 회재 이언적의 삶과 철학1 양동마을


흥선대원군이 쓴 현판이 걸려 있다. 무첨당이 있는 이집은 회재 이언적의 부친이자 손소의 사위로 양동마을에 처음 들어온 이번이 살던 집으로 이 마을에 살고 있는 경주 양동민속마을, 회재 이언적 종가집과 보물 411호로 지정된 별채